보리는 영광의 해안절벽을 감상할 수 있는 백수해안도로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도로 변에 서서 바라 본 바다의 모습은 흔히 알던 서해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었고, 우리는 새로운 건물이 이 아름다움을 가리거나 해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건물은 도로에 최대한 가까우면서 낮은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고, 대지의 전면에는 매우 넓은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 이 곳에서 짓고 있는 보리농사를 계속하는 것을 제안드렸다. 보리는 영광군의 특산품 중 하나였고, 봄의 청보리밭은 그 어떤 정원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것이었다. 대신에 보리밭 주변으로 시골길 같은 분의기의 산책길과 최소한의 조경만 추가하기로 하였다.
건물의 초입에 서면 양쪽에 콘크리트 벽이 서있는 기다란 복도 같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건물이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 사이 공간이다. 대지에는 두가지 용도지역의 경계선이 가로지르고 있었고, 사업계획의 유연성을 위해 용도 경계선을 따라 건축물을 자연스레 둘로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 건물로 진입하게 하였고, 코너를 도는 순간 보리밭 너머 서해바다를 맞이하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였다.
이 곳이 보리밭과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했기에, 자연스레 전면으로는 긴 창을 배치하였고, 대지의 경사를 실내로 끌어들여와 두 개의 바닥레벨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각도로 각지게 된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찾기보다는 딱 맞는 가구들을 디자인하여 설치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보리>는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백수 해안도로 부근에 위치한다. 본 장소가 품고 있는 선천적인 요소들인 경관과 지형을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법한 원형(原形)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건축가는 몇 가지 전략을 세운 듯 보인다. 이를테면 수평적 경관의 그 고유성을 지속하기 위해 지형과 건축의 경계를 흐려 마치 지형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과 장소의 원시성을 회귀하기 위해 청보리밭으로 되돌려 놓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교한 현장 디테일에 의해 완성된 작품이다.
최대의 공간 규모와 과한 조형감을 지닌 최근 상업건축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해안을 배경으로 넘실거리는 청보리밭을 경관의 일부로서 최대한 작고 낮게 그리고 뒤로 물러서 장소의 누(累)가 되지 않는 겸허의 건축으로 담아 낸 본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함에 아무런 이견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