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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작품

게시물 상세
작품명 양구전투기념관
위치 강원 양구군 해안면 후리 621
건축가 이성관 / (주)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수상년도 1999
대지면적 3710 지상층수 1
건축면적 375.09 지하층수
건폐율 10.11 용적율 9.48
작품설명
게시물 상세
〈해안분지(PUNCH BOWL)/SITE<br>본 기념관이 자리하는 해안면은 양구군 동북부에 위치하여 사방이 해방 1000m 내외의 산들에 의해 타원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부는 표고 500m 내외의 평탄한 고원으로 전형적인 분지형태를 이룬다. 소양강 지류들의 차별 침식으로 인해 형성된 이 분지에는 하천과 도로가 동쪽의 좁은 협곡을 통해 원통을 지나 인제군으로 남하한다. 이곳은 지리적으로는 고립되어 있으나 군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입지 한다. 따라서 이 분지의 서쪽 단부 능선에 포함되는 도솔산, 대우산, 가칭 봉의 장악은 이 요충지가 확보되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br>당시 미군들은 이 특이하게 생긴 지형을 보고 PUNCH를 담는 BOWL처럼 생긴 분지라는 의미로서 펀치 보울(PUNCH BOWL)이라 불렀다. 분지 중앙에 세 갈래의 길이 교차하고 200m 정도 떨어진 도로변에 기존의 북한산과 도솔산 전적비가 있고 그 중앙광장의 동편 부지가 신축부지가 된다. 본 부지에서의 조망은 펀치 보울과 고지의 실루엣이 직접 보이고 그 능선 너머 나머지 5개 고지가 위치함으로써 관념적으로 보이게 되는 셈이 된다.<br><br>〈양구지구 전투〉<br>1951년 7월 20일 이후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유엔군과 공산진영은 휴전협상에서 지형상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제한전쟁을 벌였다. 따라서 양구지역의 전투는 전쟁을 중지하자는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더욱 치열하게 전개된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양구지역에서는 1951년 6월에서 동년 12월까지 약 7개월간에 걸쳐 9개의 주요 지구인 도솔산, 대우산, 펀치 보울,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가칠봉, 백석산, 949 고지, 크리스마스고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그 해 8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의 단 2개월간에 전개된 5개의 지구 고지 쟁탈전에서만도 피아간의 전사 및 실종자만 2만 명을 넘는, 전사상 단일 지역 전투로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고가의 격전을 치름으로써 중동부전선 중심에 위치한 이곳의 온 산하는 피로 물들었고 단 한 포기 풀뿌리조차 남지 않았다. 이를 기록한 종군기자들이 명명한 단장의 능선(Heart Break Ridgeline), 피의 능선(Bloody Ridgeline) 등의 고지 이름만 보아도 그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 전투의 유형은 공격 전투로서 고지쟁탈전으로 전개되었고, 아군의 승리와 희생으로 그만큼 휴전선이 북상할 수 있었던 셈이다.<br>「OO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다.」 라는 일상 관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작전지역에서 가장 높은 고지는 주변 일대를 감지할 수 있어서 이를 점령하고 있는 쪽이 강력한 포사격을 집중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고지를 점령한 측은 공격군보다 적은 병력을 가지고도 효과적인 방어를 할 수 있고 손실 역시 공격군보다 적은 병력을 가지고도 효과적인 방어를 할 수 있고 손실 역시 공격군보다 적은 희생으로 끝날 수 있다. 양구지역은 내륙 산간에 있는 산세가 험준한 산악지역이고 산맥은 끝없는 고지들의 연속이며 이곳을 장악한다 함은 끝도 없는 고지의 쟁탈전과 사수로 이어진다. 전형적인 이곳 지형은 보병에게는 고통과 고난의 상징이었다. 무인이 땅을 확보하고 지키기 위한 희생을 감안할 때 고지는 너무도 고가의 목표였다.<br>전선의 일진일퇴, 사단의 이동광 배치, 장군의 전술·지휘 등은 전사록에 공식 기록으로 남게 되나 실제 육신으로 땅을 디디고 악몽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음의 혈전을 치렀던 병사들의 입장에서 본 전장에서의 기록은 개개인의 뇌리에서만 기억이란 형식으로 남아 있다. 당시 이 전투에 직접 참전했던 노병사들로부터 회상이란 방법으로 기억해낸 증언들은 지금 이 시점 일상의 우리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극단의 상황을 전하고 있다. 영하 20~30℃ 펀치 보울 정상이 끔찍한 추위에서는 쇠붙이는 너무 차서 맨 살을 건드렸다가 떼면 피부가 금방 떨어져 나갔고 모진 추위는 흐르는 피를 얼어붙게 해서 어느 병사의 경우는 실혈로 인한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60℃를 웃도는 특유의 가파른 경사면, 한국 특유의 점성의 진창, 장기간에 걸친 참호전의 고난과 장마, 몸서리쳐지도록 격렬했던 적의 공격, 웃음을 거둔, 굳은 얼굴로 싸움터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 해병 저격수들의 눈 속에 깃들인 두려움의 눈빛, 집중포화로 5m나 낮아 버린 고지 전체의 표고, 이런 것들이 이곳 전장의 리얼리티였다.<br><br>〈전투 전적기념관/전쟁기념관〉<br>양구군에서는 당시 이곳에서 격렬하게 치루어졌던 9개 지구의 전투 사실을 6.25 50주년을 맞아 기념하고 아울러 펀치 보울 DMZ 내의 제4땅굴, 을지전망대와 부지 옆의 북한관과 도솔산 전적 비등 기존의 안보관광지와 연계하여 개발하는 것이었다. 한정된 저예산 하에 개략 100평 규모의 소규모 기념전시관으로서, 군에서 원하는 내용을 단일 건물 타입의 홍보전시관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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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43_P0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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